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 나무옆의자 / 독서일 : 23. 3. 4
저는 유명하다는 책에 대한 약간의 삐딱심이 있나 봅니다. 이 책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삐딱심이 또 발휘되었거든요. 소설책을 볼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짬짬이 핸드폰은 자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냥 허전함에, 습관처럼 말이죠. 아이들을 보면서도 습관처럼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걸 스스로 한심하게 생각하면서 쉽게 놓아지지 않았어요. 그러다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전자책이라도 읽자 싶었어요.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읽게 된 것이 이 책, <불편한 편의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어요. 잠깐잠깐 짬을 내서 책을 읽는 데 점점 책 읽는 중에 짬을 내서 일을 하는 저를 발견했지요. 책 읽다 짬 내서 밥하고, 책 읽다 아이들과 놀고 말이죠. 차라리 빨리 읽고 끝내야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만큼 술술 읽히고 몰입이 확 되더라고요. 진짜 드라마 한 편 보는 느낌이었어요. 작가님이 시나리오를 썼던 이력이 있어 더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많은 분들이 읽으셨겠지만 간단히 내용을 요약해 볼게요
과거의 어떤 이유로 서울역에서 노숙자로 지내는 독고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알코올성 치매로 자신의 이름도 과거도 다 잊었어요. 그러던 중 염 여사의 파우치를 찾아 준 일을 계기로 염 여사네 편의점 야간 알바를 시작하게 됩니다. 곰 같은 사내는 말도 어눌하고 사회성도 부족해 잘 적응할까 싶지만 의외로 일 머리도 좋고 적응도 빠릅니다.
독고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의 관계가 얽히며, 처음엔 독고를 오해하고 불편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독고의 호의와 담담한 위로에 서로의 상처와 관계를 회복하는 모습이 따뜻하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독고 자신도 기억을 찾고 용서를 구하며 다른 방법으로 생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책에서 독고가 제이에스(JS 진상)들을 퇴치(?)하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 데 그 방법이 아주 신선합니다. 예의 그 곰 같은 모습의 사내가 주는 외적인 위압감도 있겠지만 JS들에게 흥분하지도 주눅 들지도 않고 담담하고 기발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한 수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비닐백을 사지도 않고 달라고 하는 진상에겐 자기의 (더러운) 에코백에 물건들을 넣어주는 모습이나,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며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한 진상에겐 통화내용으로 말을 걸며 오히려 당황함을 선사하는 모습에서 현실의 고구마를 사이다로 날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염 여사도 진정한 어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노숙자인 독고를 경계하면서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신의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려는 성숙하고 따뜻한 마음에서, 자신의 편의점에서 일하다 더 좋은 환경으로 이직하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축하해 주는 모습에서 진짜 어른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나이가 들수록 더 고집스럽고 고약해지는 그런 어른이 되지 않고, 염 여사처럼 따뜻함을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어른. 음. 이제는 그런 할머니가 되어 가야겠다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소설이란 무엇일까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허우적거리며, 자기 계발서와 투자서 사이를 헤매며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소설이 제게 손을 건네는 것 같아요. 자기 계발서와는 다른 친절하고 따뜻한 위로를 말이죠. 결국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음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을지라도 우리는 또 그 속에서 위로받고 힘을 얻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딘가에는 이런 불편하지만 따뜻한 편의점이, 곰 같은 독고씨와 따뜻한 염 여사 같은 진정한 어른들이 세계 곳곳에서 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 한켠 벚꽃 바람이 불어오는 듯합니다.
<불편한 편의점 2편>도 이미 출간되어 있다 하니 조만간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혹시 보지 못한 분이 계신다면 따뜻한 봄바람과 함께 이 책 <불편한 편의점>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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