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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살기/너와 나의 그림책 읽기

(그림책) 숀 탠 <매미>

by 월천토끼 2023.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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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탠 _ 매미

며칠 전 큰 아이가 거의 죽은 딱정벌레류의 벌레를 잡아 와서는 표본을 하겠다고 합니다. 속으로 뜨악"했지만 그 열정을 꺾을 순 없기에 모르는 척 아이에게 알아서 하라고 맡겼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여름철이라 제대로 건조하지 않으면 그 안에서 알을 까는 벌레들이 생긴다는 것이죠. 결국 창고에 잠들어있던 식품 건조기를 조용히 아이에게 내어주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울상이던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더군요. (그래 네가 좋으면 된 거야.🤣😂)
 
그리고 어제, 아이는 거의 죽은 매미를 가져왔습니다. 처음엔 매미가 움직이길래 나무에 올려주었는데 다시 가 보니 땅에 떨어져 있어 가져온 것이었어요. 매미를 제대로 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어요. 그전엔 징그럽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본 매미는 생각보다 귀여웠습니다. 눈이 양쪽 끝에 달린 것이 꽤나 귀엽게 보이더군요. 매미가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표본이 되는 것이 매미에게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도서관에서 둘째 딸이 이 책 <매미>를 찾아왔습니다. 처음엔 매미에 대한 책인가 했는데, 표지의 매미의 표정을 보는 순간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서류를 들고 서 있는 매미의 눈은 슬프고 불안해 보였습니다. 
 
회색 고층 빌딩 숲 어느 곳에 매미가 있습니다. 십칠 년 동안 아파도 쉬는 날 없이 일만 하는 매미입니다. 결코 실수 따위도 없습니다. 톡 톡 톡!
뼈 빠지게 일만 하는 매미를 인간들은 고마워하지도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매미는 그저 묵묵히 자기 일을 수행합니다. 톡 톡 톡!
십칠 년을 꼬박 일한 매미가 은퇴할 때에 파티도, 악수도 없습니다. 스스로 책상을 치우고 안녕을 고하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갈 뿐입니다. 톡 톡 톡!
옥상? 왜 옥상일까요? 옥상 난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매미를 보며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반전이 있어요. 탈피, 탈피입니다. 이 순간을 위해 매미는 십칠 년의 고된 노동과 멸시를 견뎌왔던 것일까요? 자유로이 숲으로 날아간 매미는 가끔 인간들을 생각합니다. 웃음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톡 톡 톡!

옥상 난간 위 매미

처음에 '톡톡톡'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노동과 고난의 상징 같은 소리라고 말이죠. 그런데 숲으로 날아간 다음에도 '톡톡톡' 소리가 계속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고난의 소리의 아닌 생명의 소리일까요? 회색 빌딩 숲에서도 살아있음을 알리는 소리, 그리고 마침내 푸른 숲에 다다라서는 자유로이 생을 살아내고 있다는 소리 말이에요. 
 
그럼에도 잘 모르겠습니다. 매미는 왜 십칠 년이라는 세월을 저항 한번 하지 않고 그 멸시와 고난과 노동을 다 견뎌 낸 것일까요? 그 견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 견딤이 있었기에 자유로이 날아 숲으로 갈 수 있는 것일까요? 매미의 탈피는 인간에게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미국에는 17년을 땅 속에 사는 매미가 있다고 합니다. 정확히 17년을 주기로 땅 위로 올라온다고 해요. 그래서 '17년 매미'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매미의 은퇴에 정확히 17년이 걸렸나 봅니다. 은퇴한 매미는 한 달 정도를 살다 생을 마감한다고 해요. 짝짓기를 하고 나면 수컷이, 알을 낳고 나면 암컷이 죽는 것이죠. 정말 종족보존만을 위한 한 달인 걸까요? 그들의 생을 위한 본능과 종족을 남기기 위한 노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습니다. 뜨거운 여름  한 달을 힘차게 울어대는 그들의 삶에 대해, 그리고 그 한 달을 위해 17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땅 속에서의 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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