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과를 택했었나? 분명 수학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어가 싫어 이과를 갔을 거다. (이과도 동일하게 영어를 해야 했음에도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이과에서 수Ⅱ 미적분을 보고는 바로 포기해 버렸다. 도저히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아니었다. 그래서 수능을 문과로 전향해서 보았고, 교차지원으로 다시 이과대학에 들어갔다. 쓰고 보니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 문과에도, 이과에도 적응 못한 한 인간의 오락가락 인생기인가? 대학에 들어가서는 공업수학이란 걸 배웠는데 아뿔싸 기본이 미적분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미적분이다. 대학도 망했다. 그리고 지금은 미적분과는 아무 관계없는 대학졸업장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싶은, 행정직 사무를 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대학을 다니던 동안에도 내 존재 이유는 항상 궁금했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신을 믿지만 믿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으며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에서 갸우뚱했다.(당연히 진화론과 창조론을 공부하진 않았다.) 필요에 의해 기도하고,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시간은 신과 무관하게 살았다. 그런데 사실 이런 고민들은 알콜과 함께 빠르게 사라지곤 했다. 하지만 20대와 30대를 지나면서도 순간순간 존재론적 고민은 계속되었다.
문과 남자 유시민 작가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인문학의 표준 질문이 인문학 지식만으로 대답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먼저 살펴봐야 할 또 다른 질문, '나는 무엇인가?'라는 과학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오히려 명료하다. '나는 뇌다' 뜨악. 나는 뇌다. 다행(?)이게도 작가는 이것이 과학의 문장이 아닌 문과 남자의 문학적 표현이라 말한다. 모든 감정과 생각은 뇌가 작동해서 생기니 뇌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모르고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뇌과학이 뜨는 걸까? 작가도 뇌과학이 자기 이해에는 확실히 유용하다 말한다. 작가는 뇌과학을 시작으로 경제학을 말하고, 아리스토텔리스와 칸트에서 양자역학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까지.. 인문학과 과학을 넘나들면서도 자신은 바보를 겨우 면했다 말하는 작가가 조금은 얄밉기도 하다. (바보를 면할 수 있다면 결국 천재가 아닐까?)
우리 자신을 이해하려면 과학과 인문학을 다 공부해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 그가 추천해 준 과학교양서를 독서목록에 조용히 올려본다. 언제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 그전에 이 책부터 한 번 더 읽어야 할 듯싶다. 이렇게 짧게 리뷰를 쓸 수밖에 없는 건, 이 책을 다 이해하지 못해서이니...^^;;
<코스모스><원더풀 사이언스><엔드 오브 타임><이기적 유전자><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원소의 왕국><E=mc2><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김상욱의 양자 공부><과학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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