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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살기/너와 나의 그림책 읽기

(그림책) 다니카와 슌타로, 와다 마코토 <구덩이>

by 월천토끼 2023.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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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 다니카와 슌타로 글, 와다 마코토 그림 / 김숙 옮김
  • 북뱅크
  • 책나이 1976년, 발행일 2017년 9월 30일
  • 원제 あな

<다니카와 슌타로>

작가님은 시인이셨네요. 그러고 보면 시를 그림책으로 만드는 경우가 왕왕 있으니 그림책을 쓰신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1931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철학자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가 계셨으니 문학과 예술이 삶의 당연한 일부분이었을 것 같아요. 중학교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문예지 「문학계」에 <네로>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해요. 그리고 1952년 21세에 첫 시집 <20억 광년의 고독>을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합니다. 또한 우리도 잘 아는 애니메이션 <우주소년 아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제곡 작사도 하셨어요. 시집 이외에도 동화, 그림책, 산문집, 대담집, 소설집, 번역서 등 다양한 책을 쓰셨습니다. 아흔이 넘은 나이지만 왕성한 창작 활동은 오히려 그를 살아있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와다 마코토>

1936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픽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수필가, 영화감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재다능한 예술가입니다. 소박하고 따뜻한 선으로 인물의 특징을 잘 잡아내는, 재치 있는 일러스트로도 유명하다고 하네요. 어느 분의 블로그를 보니 친구들이 합작으로 만든 그림책을 보고 부러움에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하였다고 해요. 그 덕에 구덩이라는 그림책이 빛을 보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니카와 슌타로와는 <와하 와하하의 모험>, <우리는 친구>, <여기에서 어딘가로> 등의 그림책 작업을 같이 하였습니다. 2019년도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구덩이>

이번 책은 가로로 긴 판형입니다. 그림책은 다양한 판형으로도 이야기를 한다고 해요. 아마 구덩이를 파야 하기에 세로보다는 가로로 길게, 또한 아래에서 위로 책장을 넘기게 만든 것 같아요. 표지에는 파란 동그라미 안에 하얀 나비가 날아가고 있어요.

일요일 아침, 아무 할 일이 없어서 히로는 구덩이를 파기 시작합니다. 주위 사람들의 참견에도 아랑곳 않고 꿋꿋이 구덩이를 파내려 갑니다. 그래도 이 아이의 구덩이 파는 행위를 모두가 존중해 주니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귀 뒤에서 땀이 흘려내려도 히로는 더 깊게 파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미 이때도 자기 키보다 더 깊게 구덩이를 팠는데 말이죠. 그때, 커다란 애벌레가 구덩이 아래쪽에서 기어 나왔습니다. 히로가 "안녕"하고 인사하자 애벌레는 잠자코 도로 흙 속으로 들어가 버리죠. 힘이 쭉 빠진 히로. 히로는 파는 일을 그만두고 쪼그려 앉습니다. 구덩이 안은 조용했습니다. 흙에선 좋은 냄새가 났고요. 자기가 아침나절 한 노력의 결과물을 가만히 만지며, "이건 내 구덩이야"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번 구경꾼들이 왔다 갑니다. 그리고 아빠는 꽤 멋지다고 해주죠. 그리고 히로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여느 때보다 파랗고 높은 하늘을요. 그리고 그 하늘을 나비 한 마리가 팔랑팔랑 가로질러 날아갑니다.
구덩이에서 나온 히로는 구덩이를 한번 들여다보고는 다시 '이건 내 구덩이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구덩이를 메우기 시작합니다.

구덩이 파 보셨나요? 아이들은 히로만큼 깊은 구덩이는 아닐지라도 구덩이 파는 일을 꽤나 즐기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도 흙이 있는 곳이라면 삽을 들고 땅을 파니까요. 이런 행위로써의 구덩이뿐 아니라 아이들은 자기만의 구덩이를 파야 한다 합니다. 그것이 비단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닐테지만요. 그림책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맥 바넷 글, 존 클라센 그림, 시공주니어)에 보면 어마어마한 것을 찾기 위해 땅을 파는 아이들이 나와요. 이 아이들도 히로처럼 땅을 파기 시작합니다. 히로보다 더 깊이 땅을 파요. 그런데 그 땅엔 어마어마한 다이아몬드가 숨겨져 있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그 한 치를 앞에 두고 다이아몬드가 있는 방향에서 다른 방향으로 땅을 팝니다. 그것도 여러 번을 그러지요. 그런데 정작 땅을 파고 나온 아이들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다"라고 말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은 땅 속에 있는 다이아몬드가 아니었어요. 땅을 파는 아이들의 그 몰입의 시간이 어마어마한 것이었죠.
또한 구덩이를 파는 것은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것처럼 필연적으로 겪어내야만 하는 성장의 시간입니다. 책을 보면 히로가 구덩이를 팔 때 애벌레도 흙을 파고 히로의 구덩이 쪽으로 향해요. 그런 애벌레가 히로의 구덩이와 만나고 다시 되돌아가 흙속에서 사라지면 다음 장면의 하늘에서 나비가 날아옵니다. 히로가 구덩이를 파는 것은 번데기처럼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 속에서 한 세계가 바뀌는 성장을 하는 거죠.

아이들이 각자의 구덩이를 팔 때, 어른의 시선에서 그것이 어떤 삽질이라 미리 재단해선 안될 것입니다. 그저 삽질처럼 보이는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아이들에게 어마어마한 무언가를 줄 테니까요. 우리 아이들이 구덩이를 팔 때 가만히 응원해 줍시다. 히로의 아빠처럼 말이죠. 꽤 멋지다고 말이에요.

그리고 지금 구덩이의 시간이 필요한 우리 남편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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